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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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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7일 목회 칼럼입니다.
    셰릴 샌드버그와 조직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함께 쓴 『Option B』는 샌드버그가 남편 데이브 골드버그를 갑작스럽게 잃은 경험에서 시작됩니다. 남편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던 Option A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남은 질문은 “내가 원했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제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상처받지 않는 강인함이 아니라, 상실과 아픔을 지나면서도 다시 살아갈 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질병과 실패, 깨어진 관계, 자녀에 대한 염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처럼 원하지 않았던 ‘Option B’를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의 바울도 바로 그런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며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던 바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에 맞아 죽은 사람처럼 성 밖에 버려집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그를 둘러섰을 때 바울은 다시 일어났고, 이후 자신이 상처 입었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가 다른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복음이 보여 주는 회복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우리에게 “강해져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상처 입고 쓰러진 우리를 다시 일으키고, 더 나아가 그 상처까지도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은혜의 통로로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복음은 어떻게 상처 입은 나를 다시 일으키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나의 상처까지 사용하여 사람을 세우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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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8일차 | 마가복음 11-16장2026년 9월 26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마가복음 11-16장그리스도의 십자가"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막 15:39)마가복음 11장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합니다 (막 11:8-10). 마침내 왕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길의 끝에는 왕궁이나 보좌가 아니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먼저 성전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소굴로 변해 버린 모습을 책망하시며 하나님의 집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를 다시 보여 주십니다 (막 11:15-17). 그러자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집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질문하고, 세금과 부활과 계명을 둘러싼 질문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오히려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불신앙과 위선을 드러내십니다 (막 11:27-12:40).이제 십자가의 시간이 가까워집니다.한 여인이 매우 값진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막 14:3-9).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를 향하고 계시는지 알고 계셨습니다.유월절 식탁에서 예수님은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시고, 잔을 주시며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막 14:22-24). 십자가는 우연히 일어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고 계셨습니다.그러나 그 길에서 제자들은 무너집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며,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합니다 (막 14:43-50, 66-72). 예수님은 홀로 남으십니다.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심히 놀라고 슬퍼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막 14:36). 십자가의 고통을 모르셨기 때문에 순종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고통을 온전히 아시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맡기셨습니다.마침내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 서시고, 군병들에게 조롱을 받으시며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며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막 15:31).그러나 그들의 조롱 속에 복음의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신 것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막 10:45).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을 거두시는 순간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됩니다 (막 15:37-38).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열리고 있음을 보여 주는 놀라운 장면입니다.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보던 한 로마 백부장의 입에서 뜻밖의 고백이 나옵니다."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막 15:39)마가복음의 첫 문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했습니다 (막 1:1). 그리고 이제 십자가 아래에서 한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을 높이는 분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시는 분이셨습니다.그러나 십자가가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 무덤의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소식을 듣습니다."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막 16:6)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죄와 죽음이 마지막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승리를 확증하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 실패하고 넘어집니다. 때로는 베드로처럼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부인하고, 제자들처럼 어려움 앞에서 도망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망은 우리의 믿음이 언제나 강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끝까지 지시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습니다.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실패보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두려움보다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그 은혜 안에서 다시 일어나 주님을 따라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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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7일차 | 마가복음 6-10장2026년 9월 25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마가복음 6-10장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마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을 찾아가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을 보고도 그분을 믿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너무 익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빈 들에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을 먹이십니다.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시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십니다 (막 6:1-56).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놀라운 일을 목격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은 아직 알지 못합니다.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신가.이 질문은 마가복음 6장부터 10장까지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중요한 질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과 논쟁했고, 무리는 기적을 기대했으며, 심지어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가시는 길에 갑자기 물으십니다."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막 8:27)제자들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전합니다. 세례 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선지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모두 예수님을 특별한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9)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마침내 정답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생도,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도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로 여기서부터 제자들의 더 깊은 배움이 시작됩니다.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을 걸으실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림받아 죽임을 당한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합니다 (막 8:31-32).베드로가 기대했던 것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 주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영광은 원했지만 고난은 이해하지 못했고, 왕은 원했지만 자신을 내어 주시는 왕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를 불러 말씀하십니다."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이제 질문은 "예수님이 누구신가"에서 "그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이어집니다.그러나 제자들은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길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를 놓고 다투었습니다 (막 9:33-35). 예수님은 낮아지시는데 제자들은 높아지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 주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습니다 (막 10:35-41).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가르치셨습니다 (막 9:36-37). 그리고 마가복음 10장에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이 한 말씀이 마가복음의 중심을 꿰뚫습니다.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그러나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오신 왕이 아니라 죄인들을 섬기기 위해 오신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광을 붙잡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어 죄인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이며, 움켜쥐는 길이 아니라 내어 주는 길이며, 섬김을 받는 길이 아니라 섬기는 길입니다.그리고 오늘 아침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9)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있는지를 물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답은 입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한다면 이제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야 합니다.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내가 조금 더 인정받는 것보다 한 사람을 더 섬기고,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품어 주며, 높아지는 것보다 낮아지는 길을 선택해 보십시오. 내가 내려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오늘 내가 사랑으로 섬겨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십시오.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은 결국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따라가는 삶으로 나타납니다.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막 8:29)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대답하기를 원하십니다."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오늘의 기도사랑의 주님,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지 않고 우리의 삶으로 그 고백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나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르게 하옵소서.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섬기시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신 예수님을 닮아 오늘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선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이 걸으신 길을 믿음으로 한 걸음씩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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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6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6일차 | 마가복음 1-5장2026년 9월 24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마가복음 1-5장복음의 시작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마가복음 1장 1절마가복음은 긴 서론 없이 곧바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그리고 세례 요한의 등장과 예수님의 세례, 광야의 시험을 지나 곧바로 예수님의 공생애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마가가 보여 주는 예수님은 끊임없이 움직이시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내쫓으시고, 죄인을 부르시는 분입니다.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복음은 단순히 우리의 형편이 조금 나아진다는 소식이 아닙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 가운데 시작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앞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반응은 회개와 믿음입니다.마가복음 1-5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놀라운 권위를 연이어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그의 죄까지 용서하십니다. 풍랑을 향하여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하시자 바다가 잔잔해지고, 군대 귀신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을 자유롭게 하십니다.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을 고치시며, 마침내 죽은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시며 일으켜 세우십니다.이 모든 사건은 한 가지 질문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마가는 그 답을 처음부터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사람을 억누르는 권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죄와 질병과 사탄과 죽음 아래 신음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자유롭게 하는 구원의 권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멀리하던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로워진 뒤에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를 인정하며 그분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오늘도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서십시오.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염려와 상처, 죄와 연약함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에서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복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우리의 새로운 삶도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오늘의 기도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복음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숨기지 않고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게 하시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에 날마다 순종하게 하옵소서. 삶의 풍랑과 두려움 속에서도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권위를 신뢰하게 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시고 고치시며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옵소서.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삶으로 나타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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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3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5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5일차 | 마태복음 25–28장2026년 9월 23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28장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장 20절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인 25–28장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25장에서 예수님은 열 처녀와 달란트의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수동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맡겨 주신 것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가장 작은 자를 돌아보며, 언제 주님이 오시더라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입니다.그러나 26장에 들어서면서 이야기는 십자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갑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탁에서 떡과 잔을 나누시며 자신의 죽음이 많은 사람을 위한 언약의 피를 흘리는 대속의 죽음임을 밝히십니다. 겟세마네에서는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며 끝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십니다. 제자들은 도망하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만,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십니다.27장의 십자가는 인간의 죄악과 하나님의 구원이 교차하는 자리입니다. 조롱과 배척을 받으시고 마침내 죽으신 예수님을 향해 백부장은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실패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성취됩니다.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그리고 28장,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는 선언합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슬픈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죄와 죽음의 권세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다는 복음의 선언입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시고 놀라운 사명을 맡기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그러나 주님은 사명만 주시고 제자들을 홀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마태복음의 마지막 말씀은 명령이면서 동시에 약속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이 말씀은 마태복음의 처음과 마지막을 연결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때 그분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은 마지막 순간에도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마태복음 전체를 감싸고 있는 가장 큰 은혜는 바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두려운 순간이 있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너무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담대함은 내가 강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에서 나옵니다.오늘 어디에 있든지 그곳이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자리입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외롭고 힘든 순간에도 주님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두려움보다 약속을 붙드십시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다시 한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며 제자를 세우는 삶을 살아가십시오.오늘의 기도부활하신 주 예수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형편과 감정이 흔들릴 때에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신 주님의 약속을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자리에서 충성하게 하시고,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살아가며, 삶과 말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에 쓰임 받게 하옵소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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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4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4일차 | 마태복음 22-24장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24장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태복음 24장 13절마태복음 22장에서 24장으로 이어지면서 예수님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긴장은 절정에 이릅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여러 질문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에서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후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탄식하십니다.이어지는 24장에서 제자들이 성전 건물을 가리키자 예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며 주님의 오심과 세상 끝에는 어떤 징조가 있을지를 묻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종말의 날짜를 계산하거나 사건들을 추측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고 전쟁과 난리의 소문이 들리며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 때문에 미움을 받고 환난을 겪으며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혼란 가운데서 제자들이 붙들어야 할 한 가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성경이 말하는 인내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고통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흔들려도 그리스도를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세상이 변하고 우리의 형편이 어려워져도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신뢰하며 오늘 맡겨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특별히 예수님은 이 모든 혼란 가운데서도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역사는 혼돈을 향해 무작정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상에서 물러나는 공동체가 아니라 끝까지 복음을 붙들고 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때로는 흔들릴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응답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세상의 혼란과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지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의 작은 순종을 계속하고 다시 말씀 앞에 서며 다시 기도하고 다시 사랑하는 것이 끝까지 견디는 믿음입니다.오늘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언제 주님이 오실지를 계산하는 것보다 오늘 주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까지 말씀을 붙들고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잃지 않고 충성스럽게 걸어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흔들리고 우리의 형편이 어려울 때에도 두려움과 미혹에 빠지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랑이 식지 않게 하시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게 하시며 오늘 맡겨 주신 작은 일에 충성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소망하며 천국 복음을 삶과 입술로 전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며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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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27.2026 (2026년 9월 21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3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3일차 | 마태복음 19-21장2026년 9월 21일 월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20장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노라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복음 20장 28절마태복음 19장에서 21장으로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은 점점 예루살렘과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십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제자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 나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드러납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아질 것인지에 관심을 두었지만 예수님은 누가 더 낮아져 섬길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두 아들이 주님의 나라에서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 말을 듣고 분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들 역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더 높은 자리와 인정과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예수님은 세상의 통치 방식과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권력은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교훈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바로 그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섬김의 절정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는 십자가입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복음의 중심에는 자신을 높이신 왕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낮추신 왕이 계십니다.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단순한 희생이나 봉사가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의 섬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묵묵히 돕고 먼저 손을 내밀며 나의 편안함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삶입니다.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도 우리는 쉽게 누가 나를 알아주는지 누가 내 의견을 존중하는지에 민감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 우리의 시선을 자리에서 사람에게로 돌리십니다. 내가 얼마나 높아졌는가보다 오늘 누구를 섬겼는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위대함의 기준은 높은 자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낮아지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곁에 하나님께서 섬기도록 맡겨 주신 한 사람을 바라보십시오.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작은 배려와 보이지 않는 수고도 주님을 닮아가는 섬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듯이 오늘 우리도 받은 사랑을 누군가에게 흘려보내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높아지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처럼 낮아져 다른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나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돌아보게 하시며 작은 일에도 기쁨으로 손을 내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 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그 사랑을 삶으로 흘려보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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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20일 목회 칼럼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주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를 묻습니다. 그러나 선교학자이자 구약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The Mission of God’s People』에서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성경의 큰 이야기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을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다시 보내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 안에는 이미 ‘보냄’이라는 방향성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단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어디로 보냄 받았는가?”를 묻는 삶입니다. 공항에 수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모여 있어도 각자가 타는 비행편에 따라 각자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우리도 매주 교회로 모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은 그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선교의 중심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옮겨지고, 복음이 본격적으로 땅끝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선교는 전략회의나 인간의 계획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교회가 먼저 계획하고 성령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말씀하시고 교회가 순종하여 움직였습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의 선교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움직이는 교회, 그 작은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음의 길을 여셨습니다. 말씀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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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9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2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2일차 | 마태복음 16-18장2026년 9월 19일 토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16장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태복음 16장 16절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사람들이 말한다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선지자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질문을 제자들에게 직접 돌리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제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세상의 평가가 아니라 제자들 자신의 고백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이 고백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훌륭한 스승이나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예수님에 관하여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에만 달려 있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누구로 믿고 고백하며 그분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는 바르게 고백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을 가셔야 하는지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며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막아섭니다. 영광의 그리스도는 원했지만 십자가를 지시는 그리스도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우리에게도 같은 유혹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어려움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길의 중심에 십자가를 놓으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욕심과 계획과 자존심을 삶의 주인 자리에 두지 않고 예수님께 그 자리를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일부러 고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있더라도 그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에는 말로만 대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시간과 선택과 관계와 삶의 방향이 그 대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면 오늘도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며 그분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십자가 없는 제자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마지막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음 뒤에 부활을 말씀하셨듯이 주님을 따라 자신을 내려놓는 길 끝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생명과 영광이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분의 뒤를 충실히 걸어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고백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지 않고 우리의 선택과 삶으로 그 믿음을 나타내게 하옵소서. 내 뜻과 욕심을 내려놓고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맡겨 주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어려움 앞에서도 주님의 길을 피하지 않게 하시고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과 생명의 소망을 바라보며 끝까지 충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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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8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1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1일차 | 마태복음 13-15장2026년 9월 18일 금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13장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귀 있는 자는 들으라 마태복음 13장 9절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여러 비유를 통해 가르쳐 주십니다. 씨 뿌리는 자와 밭의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의 비유가 이어집니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시작되고 자라며 마침내 완성되는지를 보여 줍니다.그 가운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같은 씨가 뿌려지지만 씨가 떨어진 땅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 버리고 돌밭의 씨는 곧 싹이 나지만 뿌리가 없어 말라 버립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문제는 씨에 있지 않습니다. 모든 밭에 뿌려진 씨는 동일합니다. 차이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우리도 매일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지만 말씀이 언제나 삶의 열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이 굳어 말씀이 들어오지 않고, 어려움이 찾아오면 쉽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성공에 대한 욕심과 분주함이 말씀을 가로막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많이 듣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있는가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크고 화려하게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되고 누룩처럼 보이지 않게 스며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그 작은 씨앗이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과 관계를 변화시키고 결국 삶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내 마음은 길가처럼 굳어 있지는 않습니까. 돌밭처럼 순간적인 감동만 있고 뿌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까.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 가시처럼 말씀을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좋은 땅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을 붙들며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삶의 작은 순종으로 옮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순종을 통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오늘의 기도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많이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듣고 깨달아 순종하는 좋은 마음을 주옵소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세상의 염려와 욕심이 말씀을 가로막지 못하게 하옵소서. 오늘 주시는 말씀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작은 것부터 순종하게 하시며 그 말씀의 씨앗이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을 변화시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들을 귀를 주시고 말씀에 반응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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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7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90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90일차 | 마태복음 10-12장2026년 9월 17일 목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10장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장 31절마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이제 제자들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길이 언제나 환영받는 길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박해를 당하며 때로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인정과 안전을 보장받는 길이 아니라 때로는 손해와 오해와 외로움까지 감당해야 하는 길입니다.그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참새를 예로 드십니다. 당시 참새는 매우 값싼 새였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돌보심 밖에 있지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얼마나 더 귀한 존재이겠습니까.예수님은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얼마나 세밀하게 알고 계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멀리서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과 말하지 못한 염려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까지 알고 계십니다.우리의 두려움은 종종 내가 혼자라고 생각할 때 커집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때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든 상황이 원하는 대로 풀릴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아시고 붙드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무엇이 여러분의 마음을 두렵게 합니까.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입니까. 사람들의 평가입니까. 앞날에 대한 불확실함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두려움에 붙잡히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맡겨진 길을 걸어가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참으로 귀한 사람들입니다.오늘의 기도하나님 아버지 앞날을 알 수 없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며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작은 참새 한 마리도 돌보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주님의 세밀한 사랑을 믿게 하옵소서.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을 더 바라보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나를 알고 계시며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맡겨진 길을 걸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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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6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9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9일차 | 마태복음 7-9장2026년 9월 16일 수요일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7장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장 24절마태복음 7장은 산상수훈의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고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가르치시며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을 마무리하시면서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까.예수님은 두 종류의 길과 나무와 사람과 집을 보여 주십니다.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고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가 있으며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입술의 고백이나 종교적인 활동만으로 증명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선택과 행동 속에서 열매를 맺습니다.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집을 짓는 두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 모두 집을 지었고 두 집 모두 비와 홍수와 바람을 만났습니다. 차이는 폭풍이 아니라 기초였습니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반석 위에 집을 세웠고 다른 사람은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아 모래 위에 집을 세웠습니다.우리의 삶에도 비와 바람은 찾아옵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과 관계의 갈등과 실패와 염려가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의 삶을 붙드는 것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 위에 삶을 세워 왔는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매일의 작은 선택과 순종을 통해 삶의 기초가 세워집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읽는 것에서 멈추지 마십시오. 오늘 들은 말씀 가운데 한 가지라도 삶으로 옮겨 보십시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용서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면 손을 내밀고 염려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십시오.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대로 사는 것 사이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 가십시오.폭풍이 없는 집이 안전한 집이 아닙니다. 반석 위에 세워진 집이 안전한 집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생각과 말과 선택을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워 가기를 바랍니다.오늘의 기도하나님 아버지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게 하옵소서. 우리의 믿음이 말에만 머물지 않고 좋은 열매로 나타나게 하시며 매일의 작은 선택 속에서 주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어려움과 흔들림이 찾아올 때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우리의 가정과 삶과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굳게 세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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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5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8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8일차 | 마태복음 4-6장2026년 9월 15일(화)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4장예수님이 오신 곳에 하나님 나라가 시작됩니다“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마 4:17)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입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광야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려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십 일을 금식하신 후 가장 약해진 순간에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유혹,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하나님의 보호를 증명하라는 유혹, 세상의 모든 나라와 영광을 얻기 위해 사탄에게 절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이 시험의 중심에는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여 배고픔을 해결하거나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거나 십자가 없이 세상의 영광을 얻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4, 7, 10).여기에는 이스라엘의 광야 역사도 떠오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 시험받았지만 반복해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불순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광야의 시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실패했던 이스라엘과 달리 참되고 신실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증명하는 왕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는 왕이십니다.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로 가셔서 첫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죽은 후에 가는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통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임하기 시작했다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단순히 잘못한 일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과 중심을 돌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어 갈릴리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듣고 동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제자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와 아버지를 떠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삶의 여러 부분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삶 전체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님이 되셨습니다.우리도 매일 수많은 선택 앞에 섭니다.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지, 성공과 안전을 위해 어디까지 타협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결과와 힘과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관계와 계획 속에서 예수님께서 실제로 왕이 되시도록 삶을 맡겨 드리십시오. 내 생각과 욕심을 앞세우기보다 말씀에 순종하고, 세상의 인정과 성공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선택하십시오. 예수님을 따르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은 오늘도 시작됩니다.오늘의 기도우리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나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시작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유혹과 욕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하시고, 눈에 보이는 성공과 인정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선택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마음을 돌이켜 주님의 다스림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충실히 따라가는 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모든 관계 속에서 주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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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9.2026 (2026년 9월 14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187일차)
    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187일차 | 마태복음 1-3장2026년 9월 14일(월) 아침묵상본문: 마태복음 1장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 1:23)구약성경의 마지막 책 말라기가 끝난 후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 1:1). 이 한 문장에는 구약의 오랜 기다림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왕의 언약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기 시작합니다.마태복음 1장에 기록된 긴 족보는 단순한 이름의 목록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믿음의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으며 왕도 있고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도 있습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처럼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도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스러운 역사뿐 아니라 죄와 실패, 바벨론 포로라는 깊은 상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실패가 하나님의 약속을 중단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사람들과 깨어진 역사를 통하여 구원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어 오셨습니다.마침내 그 역사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천사는 요셉에게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말씀합니다(마 1:21). 예수라는 이름에는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이나 형편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주이십니다.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을 소개합니다.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마 1:23). 이것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놀라운 복음입니다. 에덴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다시 함께 거하시기 위한 구원의 역사를 계속 이루셨습니다. 성막과 성전을 통하여 백성 가운데 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우리는 어려움을 만날 때 종종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복음은 먼저 우리의 형편이 즉시 바뀔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약속을 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에서 시작된 마태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으로 끝납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마태복음의 처음과 마지막을 붙들고 있는 약속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입니다.그러므로 임마누엘의 신앙은 문제가 없는 삶을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외롭고 힘든 시간을 지날 때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새로운 복음서 읽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믿는 복음의 중심에는 멀리 계신 하나님을 찾아 올라가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우리를 찾아 내려오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어떤 상황을 지나더라도 임마누엘의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오늘을 살아갈 가장 큰 위로이며 소망입니다.오늘의 기도임마누엘의 하나님 아버지, 오랜 약속을 신실하게 이루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형편만 바라보다가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외롭고 힘든 순간에도 임마누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고, 오늘 하루 어디에 있든지 주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더욱 깊이 알고 사랑하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쁨으로 따라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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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Sep 12.2026 2026년 9월 13일 목회 칼럼입니다.
    우리는 감옥이라고 하면 높은 담장과 쇠창살, 굳게 닫힌 철문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현대의 감옥은 반드시 담장 안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을 통해 감시의 질서가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올 때 스스로를 통제하게 되는 모습을 주목했고, 한병철은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이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스스로 죄수가 되어 가는 역설을 이야기합니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오히려 더 불안하고 고립될 수 있다는 현대인의 역설은, 감옥이 때로 외부의 벽보다 마음 안에 더 견고하게 세워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사도행전 12장은 감옥에 갇힌 베드로를 보여 줍니다. 헤롯의 권력이 그를 붙잡고, 군인들이 지키며, 쇠사슬과 철문이 그의 앞을 가로막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감옥 밖의 또 다른 장면을 함께 보여 줍니다. 어느 집에 성도들이 모여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헤롯과 맞설 권력도, 감옥을 무너뜨릴 무기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행 12:5)는 말씀은 사도행전 12장의 긴장을 한 문장에 담아냅니다. 한쪽에는 감옥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감옥문과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 가운데 과연 어느 쪽이 더 크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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