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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2026년 10월 2일) '리딩 지저스' 성경읽기 및 매일 묵상 (제203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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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팜스프링스개혁장로교회
조회 36회 작성일 26-10-03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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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리딩지저스 성경읽기 203일차 | 누가복음 17-20장

2026년 10월 2일 금요일 아침묵상

본문 누가복음 17-20장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이 계속됩니다. 십자가가 가까워질수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며, 그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지를 묻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눈에 보이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미 그들 가운데 임하고 있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죄인이 용서받으며, 잃어버린 자가 하나님께 돌아오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임하였으면서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인자가 다시 오실 날을 말씀하시며 노아의 시대와 롯의 시대를 떠올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지으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심판이 임했습니다 (눅 17:26-30).


문제는 일상생활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문제였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오늘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기다림의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을 끊임없이 찾아갑니다. 아무도 그녀의 억울함에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재판장은 그녀의 간청을 들어줍니다 (눅 18:1-5).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 하나님이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끈질긴 간청을 들어준다면,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기 백성의 기도를 어찌 외면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눅 18:6-7).


그리고 예수님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주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마지막까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응답이 더디게 느껴져도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 세상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 눈앞의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과 다르게 보일 때에도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의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던 세리는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18:13).


예수님은 바로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말씀하십니다 (눅 18:14). 하나님 나라의 믿음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는 겸손한 믿음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이르면 그 은혜가 한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키가 작고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을 볼 수 없자 앞으로 달려가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눅 19:2-4).


그런데 놀랍게도 삭개오가 예수님을 찾기 전에 예수님께서 먼저 삭개오를 찾아보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눅 19:5).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시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합니다 (눅 19:8).


은혜를 만난 사람에게는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9-10).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에 올라갔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마침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며 왕을 맞이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십니다 (눅 19:41). 그들은 평화의 왕이 가까이 오셨지만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는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눅 19:45-46).


누가복음 20장에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권위를 계속해서 공격합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선지자들을 보내셨지만 사람들이 그들을 거절했고, 마침내 사랑하는 아들까지 보내셨음을 말씀하십니다 (눅 20:9-16).


이제 그 아들이 십자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7-20장은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을 남깁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우리는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될 하나님 나라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게 느껴지고,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믿음이 필요합니다.


과부처럼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세리처럼 자신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십시오.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난 은혜가 우리의 삶과 관계와 물질을 변화시키게 하십시오. 그리고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것은 화려한 성공이 아니라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오늘의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응답이 더디게 느껴질 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세리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게 하시며, 삭개오처럼 주님의 은혜를 만난 우리의 삶에 참된 변화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세상의 분주함 속에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잊지 않게 하시고, 인자가 오실 때 찾으시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도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며 복음을 나타내는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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